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해뜨는 풍경

소화묘원의 일출과 두물머리

# 소화묘원


  - 지금까지 사진찍으면서 서울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가본 곳을 꼽으라면 단연 두물머리가 1위다. 


  하지만 지금까지 마음에 들만한 사진은 단 한장도 건지지 못한 비운의 장소이기도 하다. 


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.... 바로 인근의 소화묘원은 단 한차례로 가보지 않았었다.


  때마침.... 일교차가 커서 물안개가 발생할것 같기에..... 마이니콘님과 소화묘원에 올랐다. 운이 좋게도 출입문이 열려있어서 차량으로 쉽게 오를 수 있었다.


  그렇지 않았으면.... 새벽부터 삼각대 메고...등산할 뻔 했다.....ㅡㅡ^









 - 서서히 어둠이 걷히고...... 동쪽하늘이 붉게 물들면서.... 햇님이 올라올테니 준비하라는 신호를 보낸다.... 


 처음 오는 장소에서는 늘 그렇듯이 머리속에서... 고민이 시작된다. 망원으로 해를 당길까? 아니면 광각으로 넓게 찍을까?


 오늘의 선택은 광각이었다. 나의 헝그리 광각렌즈..... 니콘 AF 18-35mm 주변부의 극심한 화질저하 때문에..... 자주 사용하진 않지만...


 그래도 14-24N을 살때까지는 이 녀석이 나의 광각영역을 맡아주어야 한다. ㅠ.ㅠ












 




# 두물머리


  - 소화묘원에서 일출 사진을 마무리하고...... 가족과 함께 오신 괴물님이 계신 두물머리로 향했다.


    위에서 내려다보니 오늘도 두물머리는 황~ 이었을 듯 싶다. 소화묘원으로 올라오길 잘 했구나.. 하는 생각이 든다.


    괴물 형님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...... 우리를 가장 먼저 맞아주는 것은 오리 녀석들이다....ㅋ


    농장아저씨께서 먹이를 주시면서 우리에게 오리에 대한 여러가지를 알려주셨다...






 - 오리를 뒤로 하고..... 수년간 나의 기름값과 시간을 잡아먹었던 두물머리 강가로 이동하였다.


    두물머리에 서서 강 건너를 바라보면 생각나는 인물이 있다. 바로 연암 박지원이다. 

 

    대학시절 연암을 좋아하시던 교수님 덕분에 수업시간에는 늘 연암의 작품들을 보고 배웠었다.


    그 중에 큰누나를 잃고... 쓴 묘지명은 다음과 같다. (정확한 원문을 다시 찾아보고자 하는데... 인터넷으로는 한계가 있어서...)


아아! 누님이 시집가던 날 

새벽 화장하던 것이 어제 일만 같구나. 
나는 그때 막 여덟살이었네.  


 (중략)


말을 세워 강 위를 멀리 바라보니, 
붉은 명정은 바람에 펄럭거리고, 
돛대 그림자는 물 위에 꿈틀거렸다. 
  
언덕에 이르러 돌아가더니 
나무에 가리어서 다시는 볼 수가 없어라. 
강 위 먼 산은 검푸르러 마치 누님의 쪽진 머리 같아라. 
강물 빛은 누님의 화장 거울 같고, 
새벽달은 누님의 눈썹 같아라. 
울면서 빗을 떨구던 일을 생각하나니 
유독 어릴 적 일은 또렷하고 또 즐거운 기억이 많네. 
  
세월은 길어 그 사이에는 
언제나 이별의 근심을 괴로워하고 
가난과 곤궁을 근심하였다. 
인생살이 덧없기 마치 꿈속과도 같구나. 
형제로 지낸 날들은 또 어찌 이다지 짧았더란 말인가. 

떠나는 이 정녕 뒷날의 기약을 남기지만 보내는 이 오히려 눈물로 옷깃 적시네. 

조각배 이제 가면 언제나 돌아 오려는가. 보내는 이 무심하게 언덕 위로 돌아가네. 
  
--  연암 박지원 시 ‘누님을 보내며’ 중에서 


    바로 여기서 누님을 떠나 보내는 장소가 양수리라는 사실은..... 아마 그 교수님 수업시간이 아니었다면 알기 어려웠으리라...


    아무튼.... 연암이 이 넓은 두물머리 어느 곳에서 누님의 마지막을 배웅했는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, 나에게 두물머리는 애틋한 장소임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.